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미래권력'으로 불린다. 대선 예비주자 가운데 단연 1위여서 일거수일투족이 관심 대상이다.
그러한 박 전 대표가 개헌, 무상복지, 국가과학비즈니스벨트(과학벨트) 등 각종 현안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아예 거리를 두려는 의도마저 엿보인다. 현안에 대한 의중을 내비치면 '무득유실(無得有失ㆍ얻을 것은 없고 잃을 것만 있다)'이라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박 전 대표는 연말연초에 두드러진 행보를 보였다. 지난해 말 자신이 직접 주최한 사회복지기본법 공청회에서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라는 복지정책 구상을 발표했다. 2012년 대선을 겨냥해 싱크탱크 격인 '국가미래연구원'을 발족하기도 했다. 새해에는 자신의 텃밭인 대구ㆍ경북 지역에 내려가 2박3일간 20개 이상 일정을 소화하며 광폭 활동을 펼쳤다.
박 전 대표는 이처럼 행동 반경을 넓히면서도 현안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대구에서도 수차례 취재진과 마주했지만 입을 꾹 닫았다. 최근에는 외부 활동도 거의 하지 않고 있다. 한 측근은 "당분간 정책 공부를 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 공부 중이라고 보면 된다"고 근황을 전했다.
박 전 대표 침묵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의견이 오간다. 정치지도자로서 현안에 대해 마땅히 소신을 밝혀야 한다는 의견이 있고, 현안마다 목소리를 내면 대통령 레임덕만 부추기게 된다며 침묵이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있다.
최근 부각된 정치 현안 가운데 그가 입을 연 것은 개헌이 유일하다. 그나마도 대구 방문 중 취재진에게 "그동안 제가 개헌에 대해 얘기했던 것을 쭉 보시면…"이라고 짧게 언급하는 데 그쳤다.
대변인 격인 이정현 의원은 "박 전 대표만큼 개헌 방향을 명확하게 말한 사람이 어디 있느냐. 줄곧 4년 중임제 대통령제를 말해왔고, 이게 바뀌지 않은 이상 더 언급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복지 이슈를 먼저 제기해 놓고도 무상복지 논쟁에는 어떤 발언도 하지 않고 있다. 민주당 무상복지론이 정치적이라고 보는 만큼 여기에 휘말리지 않겠다는 뜻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박근혜식 복지가 여당의 선별적 복지와 야당의 무상복지 중간쯤에 있는 것으로 평가한다. 진보진영을 어느 정도 끌어안기 위한 포석이라는 것. 다만 이 경우 재원 문제에 봉착하게 되고, 재원 마련을 위해서는 증세가 불가피해진다. 이러한 논리적 귀결이 박 전 대표 지지기반인 보수층의 반발을 살 수 있으므로 의도적으로 침묵하고 있다는 게 김 교수 해석이다.
과학벨트 문제에 대해 한 친박계 의원은 "세종시 문제와 달리 입법사항이 아니므로 박 전 대표가 따로 입장을 밝히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시 문제는 국회의원으로서 당연히 나서야 할 일이었지만 과학벨트 문제 해결은 정부 몫이기 때문에 나설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과학벨트 유치를 위해 대구ㆍ경북 지역도 뛰어든 만큼 이 문제에 대해서는 박 전 대표가 세종시처럼 나서기는 어려울 것이다. 과학벨트 문제는 발을 담글수록 어느 한 지역 표를 잃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애초에 거리 두기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전 대표 침묵을 긍정적으로 보는 의견도 많다. 현안마다 입을 열면 자칫 조기에 대선 열기가 뜨거워지고, 친이ㆍ친박 간 갈등이 심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아직 임기가 2년이나 남은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발목 잡기로 비쳐질 수 있고,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 측근은 "현안에 대해 말을 아끼라고 조언하고 있으며, 당분간은 현안에 대해 명확한 자기 의견을 밝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언론 접촉도 당분간 자제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략적 침묵'이라는 얘기다. 그는 박 전 대표의 행보 자제에 대해서도 "미래정책연구원이 너무 일찍 언론에서 대선 싱크탱크로 부각되는 게 부담스럽다. 현재 지지율을 갖고 일희일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